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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치클리어링, 야구의 감정이 폭발하는 순간

by exit-daily-life 2025. 10. 21.

야구는 흔히 ‘신사적인 스포츠’라고 불리지만, 동시에 감정이 가장 뜨겁게 폭발하는 스포츠이기도 합니다.
그 중심에는 바로 벤치클리어링(Bench-Clearing) 이 있죠.

말 그대로 ‘벤치를 비운다’는 뜻인데, 이 말이 생겨난 이유는 간단합니다.
경기 중 양 팀의 감정이 폭발하면, 벤치에 있던 선수들까지 전부 그라운드로 뛰쳐나오기 때문이에요.
투수와 타자의 충돌, 험한 몸싸움, 그리고 팀 전체가 나서는 장면은 야구에서 보기 드문 ‘전쟁 같은 순간’이죠.

하지만 겉으로 보기엔 단순한 싸움 같아도, 벤치클리어링에는 명확한 이유와 규칙, 그리고 문화적 의미가 존재합니다.
오늘은 그 흥미로운 세계를 하나씩 풀어보려 합니다.

 

벤치클리어링중인 야구선수들

 

벤치클리어링의 시작 – 단순한 분노가 아닌 ‘야구의 본능’

벤치클리어링은 사실 야구 초창기부터 존재했습니다.
야구가 미국에서 처음 프로화되던 19세기 후반, 당시에는 헬멧도, 보호장비도 미비했죠.
투수가 던진 공에 타자가 맞으면 생명에 위협이 갈 수도 있는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몸에 맞는 공(HBP, Hit By Pitch)’은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명백한 도전이자 모욕으로 여겨졌습니다.

예를 들어, 타자가 홈런을 친 뒤 천천히 베이스를 돌며 상대를 도발한다든가,
투수가 일부러 타자의 몸 쪽 깊숙이 공을 던지면 그 즉시 양 팀의 감정이 끓어오르죠.
이런 상황에서 한쪽이 먼저 항의하면,
“내 팀이 무시당했다”는 생각에 벤치의 선수들이 전부 뛰쳐나오는 겁니다.
즉, 벤치클리어링의 뿌리는 단순한 분노가 아니라,
“우리 팀을 지키려는 본능적인 행동”에 가깝습니다.

초창기 메이저리그에서는 이런 일이 너무 잦았어요.
특히 1970~1980년대에는 팀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한 ‘보복구’ 문화가 존재했죠.
한 팀이 상대의 주전 타자를 맞혔으면, 다음 경기에는 상대 투수도 일부러 한 명을 맞히는 식이었어요.
이걸 ‘야구의 암묵적 룰’이라고 부르기도 했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규정이 엄격해지고, 부상 위험이 커지자
벤치클리어링은 점점 ‘실제 싸움’보다는 ‘감정 표출의 상징’으로 변했습니다.
요즘은 주먹보다는 말싸움, 위협적인 제스처 정도로 끝나는 경우가 많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짧은 순간이 야구팬들의 심장을 뜨겁게 만드는 이유는 분명합니다.
그 안에는 진짜 야구의 본능, 팀의 자존심이 살아 있기 때문이에요.

 


 

벤치클리어링의 이유 – 언제, 왜 폭발하는가?

야구에서 벤치클리어링이 일어나는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대부분은 ‘감정의 누적’입니다.
보통 경기 중 다음과 같은 상황들이 트리거(도화선)가 되죠.

(1) 몸에 맞는 공 – 가장 전형적인 원인

가장 흔한 이유는 바로 몸에 맞는 공(HBP)입니다.
투수가 공을 너무 안쪽으로 던져 타자의 몸을 맞히면, 의도적이든 아니든 불쾌감이 생깁니다.
특히 경기 초반이 아닌, 이미 신경전이 있던 경기 중이라면 그 의미는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앞선 타석에서 타자가 홈런을 쳐서 세리머니를 크게 했는데,
다음 타석에 몸 쪽 공이 날아오면 “보복 아니냐”는 의심이 생기죠.
이때 타자가 마운드를 향해 걸어가기 시작하면, 바로 벤치클리어링 신호탄이 터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투수의 반응도 중요합니다.
투수가 “고의가 아니다”는 손짓을 하거나 고개를 숙이면 대부분 그냥 넘어가지만,
만약 투수가 웃는다거나 시선을 피하면 그건 거의 불씨에 기름을 붓는 행동이에요.

(2) 험한 태클과 불필요한 플레이

야구에서 충돌이 일어나는 또 다른 장면은 주루 플레이입니다.
특히 2루에서의 슬라이딩이나, 포수의 홈 블로킹 과정에서 몸싸움이 발생할 때가 많죠.

대표적인 예로,
예전 메이저리그에서는 포수가 홈플레이트를 막으면 주자가 몸으로 들이받는 장면이 흔했습니다.
이게 바로 ‘콜리전 플레이(Collision Play)'인데,
이 과정에서 부상이 잦자 2014년 이후부터는 공식적으로 금지되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살짝 과격한 슬라이딩이나, 태그 후 감정적인 말다툼은 남아 있어요.

한국에서도 2루에서의 강한 슬라이딩이 문제 되거나,
수비수가 고의로 던진 공이 주자 몸을 스치면 바로 양 팀이 들썩이죠.
이건 단순히 규칙 위반이 아니라, 상대방을 향한 무례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3) 세리머니, 감정 표현

요즘 야구에서 자주 보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세리머니(Showboating)입니다.
타자가 홈런을 친 뒤 배트를 던지거나(일명 ‘배트 플립’),
투수가 삼진을 잡고 과하게 포효하면 상대는 기분이 상할 수 있죠.

특히 미국과 일본, 한국은 문화 차이도 있어서
미국에서는 어느 정도 감정을 표현하는 게 자연스럽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상대방을 자극한다’고 받아들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벤치클리어링은 단순히 싸움이 아니라,
“감정 표현의 기준이 서로 다른 문화적 충돌”이기도 해요.

 


 

벤치클리어링의 의미 – 싸움이 아니라 팀의 결속

흥미로운 점은, 벤치클리어링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물론 폭력은 절대 용납될 수 없지만, 그 안에는 팀워크와 결속이라는 또 다른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야구는 개인 종목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팀 전체가 하나로 움직이는 집단 스포츠입니다.
투수가 위기에 몰릴 때, 타자가 위험한 공을 맞았을 때,
그 순간 벤치에서 모든 선수가 뛰어나오는 건 단순한 본능 이상의 메시지예요.

“우리 팀은 하나다.”
“누가 당하면, 다 같이 나선다.”

이게 바로 벤치클리어링의 숨은 의미입니다.

실제로 많은 감독들은 선수들이 싸움을 말리면서도
속으로는 ‘팀이 하나로 뭉쳤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보기도 합니다.
물론 규정상 퇴장이나 징계가 따르지만,
그 순간 선수들끼리 느끼는 ‘동료애와 결속력’은 시즌 내내 이어지기도 해요.

예를 들어, 2018년 KBO에서 넥센(현 키움)과 한화가 충돌했던 경기 이후,
넥센 선수들이 “그때 서로를 위해 뛰어나왔다”는 걸 계기로
팀 분위기가 훨씬 좋아졌다는 이야기도 있었죠.

즉, 벤치클리어링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감정이 터져 나온 동시에 팀의 단합을 확인하는 의식 같은 거예요.

 


 

감정의 폭발 속에 담긴 야구의 인간미

야구는 정교한 기술과 전략이 만들어내는 스포츠이지만,
그 중심에는 결국 ‘사람’이 있습니다.
투수의 실수, 타자의 오해, 심판의 판정, 관중의 함성 
그 모든 감정들이 뒤섞인 끝에 터져 나오는 게 바로 벤치클리어링이에요.

그 순간만큼은 프로 선수들도 인간적인 본능을 드러내죠.
하지만 흥미로운 건, 대부분의 선수들이 경기가 끝난 뒤
서로 악수를 하며 “감정이었을 뿐”이라고 정리한다는 점이에요.
이게 바로 야구의 매력이자, 스포츠맨십의 진짜 의미 아닐까요?

다음에 경기를 볼 때 벤치클리어링 장면이 나오면,
“싸움이 났네”가 아니라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아, 저건 팀이 하나로 뭉치는 순간이구나.”